책을 읽고 좋았던 글귀나 생각들에 대해 정리를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주위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요즘 무슨 책 읽어?"라고 물어볼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 숙론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라고 대답을 하였고, 그럴 때면 항상 상대방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숙론? 숙론이 무슨 말이야?"라고 물어보면 "음.. 토론이랑 같은 의미인데, 작가이신 최재천 교수님이 토론이라는 단어를 다른 용어로 제안하신거에요 특정 문제에 대해 함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을 숙론이라고 합니다."라고 답변을 했던 것 같습니다.
"토론이라는 말과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숙론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는, 회사 내에서 다른 분야의 인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전체 회의'나 같은 분야의 팀원들끼리 모이는 '주간보고'내에서 숙론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가족, 친구, 연인 관계에서도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숙론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숙론을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은 항상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는 관점’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00 씨가 한 말이 옳았어. 역시...", "이래저래 했지만 결국 오늘은 내가 대화의 승자다"라고 생각하며 숙론에 대해서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 '적화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행동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적화가 심해지면 "나는 관점이 다른 것이고 당신은 틀렸고 그 사람은 적이다" 혹은 "똑같이 단호해도 내 경우는 신념이고 당신은 아집에 빠진 것이고 그 사람은 독선적이다"라는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숙론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패자가 되는 관점인 '적화 증후군'을 통해서 그동안 바라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더 나아갈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이 아닌, 책 중에 글귀에 '숙론은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ah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본질적인 숙론의 목적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가장 크게 깨닫게 된 부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기에 적화 증후군의 관점에서 숙론을 하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숙론의 목적인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기 위해 모인 것이고, 누가 맞는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자리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숙론에 대한 본질적인 목적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주된 내용은 작가이신 최재천 교수님이 겪으셨던 일에 대한 여러 사례를 통해 숙론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소속되었던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실 때, 수업을 하던 당시에 학생들에게 가르치신 숙론 수업에 관련 내용이나 00 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여러 숙론 참여자들 간의 찬성과 반대에 대해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겪으셨던 일들을 통해서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태도로 그리고 진행자의 역할과 이를 참여하는 참여자의 역할로써 숙론이 이루어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혼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에 공동체가 겪고 있는 문제를 직면하였다면 이를 혼자만의 생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서로 간의 이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인 '숙론'은 불가피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글에서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이처럼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관계에서 소통은 비록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이고,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가피한 숙론과 구성원들 간의 불통의 문제를 겪고 있지만, 좀 더 합리적인 결과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숙론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감명 깊었던 글귀들을 남겨보았습니다.
(* 해당 글이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를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이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 제9장 <암수의 전쟁>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유전자의 50퍼센트를 공유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도 이해가 엇갈리는데 하물며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는 배우자 간의 갈등은 얼마나 더 격렬할까?"
갈등이 수면 아래 가라앉기보다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선진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런 갈등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지가 우리 앞에 주어진 숙제다.
섬진강을 따라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화개장터에 모여 한데 어우러지듯, 전라도와 충청도가 서로 금강을 넘나들며 '사투리로 잡담하고 오순도순 고운 정 미운 정' 나누길 꿈꾼다. 농촌사상가 고 전우익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현대사회의 계층은 '가진 자(the have)'와 '가지지 못한 자(the have not)'로 나뉜다.
게다가 재물은 가졌으나 그에 걸맞는 인품은 갖추지 못한 졸부들의 갑질 추태가 인터넷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비행이 발각돼도 그들의 사과는 한결같이 진정성이 결여된 연출에 지나지 않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도는 역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틈을 메우는 것이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간극은 존재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확인된다.
상류층은 하류층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계급의 대물림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자녀의 미래를 훔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세대가 누린 만큼의 미래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자연을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의 기본 개념이다.
교육이란 본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세대가 살아보니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판단해서 사회 진입을 앞둔 다음 세대로 하여금 기성세대와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놀이터에서 천방지축 뛰놀던 우리 아이들이 학교라는 거푸집을 거쳐 나오면 잘 깎여 한데 묶인 연필 자루들이 된다.
차이라고는 연필의 길이와 뾰족하거나 뭉툭한 정도일 뿐 놀랄 만치 균일한 제품들로 다듬어진다.
집단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하나의 잣대로 모든 걸 재는 상황에서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잣대가 다양해야 창의성이 돋아난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매사를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의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이 정해준 일정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끌고 갈 수 있어서 나는 늘 여유롭다.
코끼리 똥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 엄청난 양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많이 읽는 사람의 말과 글이 훨씬 풍성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우리 독자들이 그나마 겨우 읽는 책들은 기껏해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종류들이다.
나는 그런 책 읽기를 '취미 독서'라고 부른다. 나는 취미 독서보다 '기획 독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독서가 진정한 독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시작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우리는 거의 20년을 학생 신분으로 산다. 100세 인생으로 치더라도 인생의 첫 5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을 앞으로 다가올 인생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셈이다. 그 5분의 1 인생이 즐겁고 신나는 아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도 동일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 어느 인디언 보호 구역의 학교에 새로 부임한 백인 교사의 일화를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시험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아이들이 홀연 둥그렇게 둘러앉더란다. 시험을 봐야 하니 서로 떨어져 앉으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저희들은 어른들에게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상의하라고 배웠는데요." 우리 중에는 철저하고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늘 여럿이 함께 일한다.
칼릴 지브란의 시 <결혼에 대하여>는 자연과 우리의 삶을 적절하게 묘사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없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아 적었다가 시험 전날 죽으라고 외워 답안지를 토해낸 다음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미국 대학의 수업은 달랐다. 물론 대학원 수업이라서 더 그랬겠지만 교수님은 연신 우리에게 질문을 하란다.
(..)
이제 겨우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 질문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자 학생들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만드는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할 때 바로 들이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고 알려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지극히 단순한, 그래서 별 준비 없이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져준다.
그 사람이 답변하는 동안 할 얘기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매우 현명한 기법이다.
브라운 백 런치 미팅은 누런 종이봉투에 샌드위치 같은 점심을 싸 와 누군가의 발제를 듣고 숙론을 이어가는 편안한 공부 모임을 일컫는다.
자존심(pride)과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은 동전의 앞 뒤이거나 기껏해야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 때 나는 일어나 조금 더 일하는 거지요. 살아보니 이 세상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짓밟고 제거하며 올라서는 게 아니라 그들과 돕고 사는 가운데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면 그들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 조금 더 일하고,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는 것임을 터득했습니다.
예전의 '사후 자각(hindsight)'은 대게 어느 현자의 주관적 관찰이었겠지만 지금은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 위에 놓입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명석한 두뇌와 열정을 모으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핵심을 꿔 뚫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믿습니다.
나는 사회란 정해진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전략적으로 목표와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 다수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채택하는 시나리오 방식은 에너지산업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사용된 방법이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
회의 진행은 언제나 민망할 정도로 양극화되어 있었다. 회의 전반부의 정부 측 보고는 거의 대부분 방역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 반해, 보고가 끝나고 토론으로 접어들면 발언은 거의 완벽하게 피해 보상에 관한 질책과 호소였다.
숙론의 환경, 너무 좁은 공간이 좋을 리 만무하지만 지나치게 휑하니 넓어도 소리가 분산되어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
참여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도록 실내디자인도 개선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좌석은 숙론의 주제와 목적에 따라 달리 배치할 수 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얘기하기 민망한 주제이거나 공연히 오랜 논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일반 교실이나 강연장처럼 한 방향으로 좌석을 배치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원형 또는 마름모형으로 배열해야 대체로 보다 효율적인 숙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학교 숙론 수업에는 '카리스마 형 리더'보다 이른바 '서번트형 리더'가 적합하다.
학교 수업은 목표 달성과 성과 추구보다 관계 중심적이어야 한다. 학급 전체의 생상성보다 참여하는 개인들의 개인적 성장이 중요하다.
따라서 숙론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에게 섬김과 존중의 리더십과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온갖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과 더불어 융통성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은 없다. 엑스 X 팔로워 300만 명이 넘는 필리핀의 방송인 라몬 버스타는 더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는 질문이다." 전설적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가 남근 말과 흡사하다. "시도하지 않은 골은 100퍼센트 실패한다"
적화 증후군은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행동하는 현상이다.
적화가 심해지면 이렇게 비약한다. "나는 관점이 다른 것이고 당신은 틀렸고 그 사람은 적이다". "똑같이 단호해도 내 경우는 신념이고 당신은 아집에 빠진 것이고 그 사람은 독선적이다." 적화는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탁월한 진행자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대담이나 숙론의 목표가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느 참여자가 갑작스러운 예상 밖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매끄럽게 잘 빠져나가는지를 찾아내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어떤 질문이 주어져도 짧은 시간 내에 자기주장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만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도 물론 아니라는 것을. 대담이나 숙론의 목적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보다 많이 이끌어내 주어진 이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대를 넓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참여자들이 자기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마련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이 책에 소개하는 숙론 진행 기법 거의 모두가 그때 그에게 배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숙론이 생각만큼 잘 굴러가지 않으면 무조건 작은 모둠으로 쪼개라는 가르침은 나는 물론 그때 함께 참여한 대학원생 모두에게 평생토록 써먹을 유용한 배움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 사회에 칭찬 열풍을 불어 일으켰던 밀리언 셀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는 네 가지 반응 유형-무반응, 부정적 반응, 전환 반응, 긍정적 반응에 대한 설명이 있다.
'경청의 1:2:3법칙'이라고 알려진 조언은 충분히 곱씹어 볼만하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쳐라"
숙론 진행자가 듣는 시늉은 잘 내는데 정작 발언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몽매하게 밀어붙이는 회의가 아니라면 숙론은 완벽하게 계획한 대로 흘러갈 리 만무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의 발언이 아무리 난해해도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일상적 인간관계에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숙론을 이끄는 진행중재자가 갖춰야 할 덕목 중 단연 으뜸이다. 대담이나 숙론이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가 중요하다.
자그마치 25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토크쇼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래리 킹의 장수 비결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짧고 단순한 질문을 던지며 담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명연을 남겼다. "당신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청득심, 즉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고 최고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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